에버노트에서 LLM 위키까지: 제텔카스텐과 글쓰기로 돌아본 개인 지식 관리

1. 기록은 쌓였는데, 다시 쓰고 있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지식을 정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에버노트를 쓰다가 노션으로 옮겼고, 그다음에는 옵시디언을 사용했다. 옵시디언에서 여러 방식을 시도하다 제텔카스텐을 알게 됐고, 반년쯤 열심히 노트를 만들었다.
경제, 역사, 경영, 정치, 철학, 심리학, 프로그래밍까지 관심 가는 주제를 읽고 정리했다. 연구 노트만 대략 500개였다. 그때도 AI를 썼다.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면 답변이나 보고서 형태로 정리해 주었고, 거기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복사해 두기도 했다. 직접 읽고 내 손으로 입력한 노트도 있었다. 사용 방식은 하나로 고정돼 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노트가 많아졌다. 검색으로 다시 찾거나 링크를 따라 관련 내용을 보는 건 가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리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잊기도 했고, 공들여 정리한 내용을 다시 꺼내 쓰는 일도 드물었다.
기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록이 실제로 내 생각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지식을 모으고 연결하는 일은 사고의 재료를 마련한다. 그 재료가 내 생각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정하고, 기록을 다시 살펴 판단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내게 글쓰기는 그 과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2. 더 나은 정리법을 찾아서
지식을 기록하고 다시 찾아 쓰려는 고민은 디지털 도구보다 오래됐다. 책에서 읽은 구절이나 생각을 주제별로 모아 두는 기록법이 있었고, 자료를 쉽게 찾으려고 색인과 분류 체계도 만들었다. 1945년 버니바 부시는 문서들을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관련된 자료를 연결해 생각을 이어가는 장치를 구상했다.
에버노트에서 노션으로, 다시 옵시디언으로 옮겨간 내 경험도 그 흐름과 닿아 있다. 더 편하게 기록하고,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나중에 필요한 내용을 쉽게 찾고 싶었다. 도구는 달라져도 바라는 점은 비슷했다.
제텔카스텐은 그 바람에 매력적인 답처럼 보였다. 노트를 잘게 나누고 연결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과거의 기록을 다시 만나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내 노트도 늘어났고, 분야가 다른 내용 사이에서 연결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링크가 많아진다고 생각이 저절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노트 사이에 연결이 있다는 것과, 그 연결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길 질문을 발견하는 일은 다르다.
나는 주로 공부하기 위해 노트를 만들었다. 관심 있는 주제를 조사하고, 읽고, 정리했다. 배운 내용은 분명 많았다. 다만 그 지식으로 어떤 질문에 답하고 싶은지, 무엇을 주장하거나 만들어 내고 싶은지는 상대적으로 덜 생각했다.
공부 자체가 잘못된 목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읽고 배우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가치가 있다. 다만 내 경우에는 지식을 정리하는 일이 점점 독립적인 목표처럼 되어 갔다. 새로운 분류를 만들고 노트 구조를 바꾸는 데 시간을 쓰면서도, 그 정리가 어떤 생각으로 이어지는지는 놓칠 때가 있었다. 새로 만든 위키 저장소만 대여섯 개는 될 것이다.
정리 방식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그만큼 내 생각도 깊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3. 관리가 쉬워지면 무엇이 남을까
최근에는 안드레이 카파시가 제안한 LLM 위키를 바탕으로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자료와 질문을 주면 AI가 내용을 읽고, 관련 노트를 만들고, 기존 기록과 연결해 지식 기반을 갱신하는 방식이다. 완성된 제품이나 검증된 이론이라기보다, AI를 이용해 자료를 지속해서 통합하자는 작업 제안에 가깝다.
이런 방식은 노트를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부담을 덜어 준다. 자료를 찾고 내용을 정리하고 연결하는 일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리 작업이 쉬워지면 그만큼 다른 질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식으로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세상에는 이미 백과사전과 전문 서적, 논문, 공개된 지식 기반이 많다. AI도 여러 개념을 설명하고 분야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물론 내용이 정확한지, 출처와 맥락이 맞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일반적인 지식을 다시 정리하는 일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직접 정리하는 과정이 내 이해를 돕는다면 그 일은 의미가 있다. 특정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자료를 모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기록의 양이나 링크의 수보다, 그 기록이 내 질문과 판단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있다.
하는 일 | 남는 것 | 다음에 살펴볼 점 |
|---|---|---|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기 | 기록과 분류 | 무엇을 이해하려고 이 내용을 남겼나? |
노트를 연결하기 | 지식 사이의 관계 | 이 관계가 어떤 질문으로 이어지나? |
글을 쓰고 고치기 | 주장과 판단 | 근거를 살펴본 뒤 무엇을 다르게 보게 됐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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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원문 보기
flowchart TD A[자료를 읽고 모으기] --> B[질문 정하기] B --> C[기록과 지식 연결하기] C --> D[글로 설명하고 검토하기] D --> E[판단을 다듬기] E --> B
4. 글을 쓰면 생각의 모양이 보인다
조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관심 있는 주제를 그냥 저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 글의 출발점은 다양하다. 공부하던 개념일 때도 있고, 영상이나 오래된 광고에서 떠오른 생각일 때도 있다. 평소 갖고 있던 의견을 정리해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먼저 주제를 붙들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 읽는다. 처음 떠올린 설명이 맞는지 살펴보고, 빠뜨린 조건이나 반대되는 관점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글로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막연했던 생각이 조금씩 구체적인 문장이 된다. 머릿속에서는 당연해 보였던 전제가 글에서는 설명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자료를 읽고 나면 처음 생각을 고치거나, 주장에 조건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글쓰기는 알고 있는 내용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확인하게 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설명을 비교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을 돕는다. 나는 질문을 고르고, 답변과 자료를 살펴보고, 글에 넣을 내용과 뺄 내용을 판단한다. 초기에 AI 답변을 발췌해 노트에 붙여 두던 방식과 비교하면, 지금은 자료를 글의 질문에 맞춰 검토하는 과정이 더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글에 담긴 모든 문장이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료와 AI의 도움을 받으며 생각은 달라지고 정리된다. 내가 한 질문과 검토, 선택과 수정도 그 과정의 일부다. 글은 그 판단을 밖으로 꺼내 놓고 다시 살펴보게 하는 결과물이다.
자기 목소리라는 말도 특별하거나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 눈여겨보는 대목이 다르고, 같은 현상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경제적 조건을 먼저 보고 다른 사람은 역사나 심리를 살핀다. 반복해서 관심을 두는 문제와 중요하게 보는 근거가 한 사람의 관점을 만든다.
지식 사이의 연결도 마찬가지다. 두 개념이 서로 관련 있다는 걸 알아내는 데서 멈출 수도 있고, 그 관계를 이용해 익숙한 현상을 새롭게 해석할 수도 있다. 링크는 관계를 기록한다. 그 관계를 생각에 활용하는 것은 별도의 일이다.
모든 지식을 개인의 경험과 연결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인 직관이 편견을 강화할 때도 있다. 자료를 살펴본 뒤 처음의 믿음을 바꾸는 일이 더 나은 판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지식에 억지로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이해하려는지 놓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만든 노트들은 지금도 내 관심의 바탕으로 남아 있다. 여러 분야를 읽고 정리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다룰 주제도 생겼다. 모든 기록이 곧바로 글이나 결과물로 이어질 필요도 없다. 읽고 배우는 일만으로 충분한 순간도 있다.
다만 이제는 노트의 구조를 손보는 일만큼, 그 지식으로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조견에서 글을 쓰는 일은 지식을 다시 전시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읽고 정리한 내용 가운데 무엇이 내 판단에 남았는지, 그 판단을 어떤 근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에버노트에서 노션으로, 옵시디언에서 제텔카스텐과 LLM 위키로 옮겨 다니며 나는 지식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요즘은 그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 어떤 주제에 자꾸 눈길이 가는지, 무엇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글을 고치면서 어떤 판단을 남기는지가 한 편씩 쌓인다.
그것을 ‘내 목소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굳이 서둘러 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글을 쓰고 다시 읽다 보면, 내가 오래 바라보는 것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문장 사이에 남는다. 지금은 그 흔적을 따라가며 다음 글을 써보려 한다.
참고 자료
John Locke, “A New Method of a Common-Place-Book” (1686)
Ann Blair, early modern information-overload research (2003)
Vannevar Bush, “As We May Think” (1945)
Niklas Luhmann, “Kommunikation mit Zettelkästen: Ein Erfahrungsbericht”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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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회의실은 동의로 가득 찬 것이 아니다. 구성원의 생각이 같아도 단 한 명의 행동 조건과 연결 구조에 따라 100명이 움직이거나 전원이 침묵하는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마크 그라노베터의 임계값 모형(Threshold Model)으로 추적한다.

4,325경 가지 경우의 수의 루빅스 큐브를 20수로 푼 수학의 발상 전환, 체스판의 불변량, 아인슈텔룽 효과를 통해 무작정 노력을 늘리는 대신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다루는 4가지 출구를 살핀다.